다시는 어느 누구도 너를 두고 ‘버림받은 자’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너의 땅을 일컬어 ‘버림받은 아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 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 이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주님께서 너를 좋아하시며,
네 땅을 아내로 맞아 주는 신랑과 같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62:4
드디어 신부가 입장했다.
캐나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라고 했다.
웨딩드레스도, 식순도, 무대배치와 장식도, 피로연 음식도 신부가 결정한다.
비용만 지불하고 맡기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모든 하객이 일어나 신부를 맞았다.
이미 입장해서 단상에 서 있는 신랑도 신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랑은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를 결혼식 전에는 봐서는 안된다고 했다.
신부가 하객들과 식전에 같이 사진을 찍는 것도 안 된다고 했다.
모두의 시선이 신부에게 고정되어 있는 그 순간에 나는 신랑을 보았다.
감격과 설레임이 묘하게 교차되는 그의 표정이 감동적이었다.
신랑의 들러리들도 신부가 아닌 신랑을 보고 있었다.
"내 친구에게서 저런 표정을 본 적 있었나" 싶은 미소를 지으며 신랑의 옆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들러리들을 보고 있자니 친구가 참 좋구나 싶었다.
소영자매 결혼식은 한국과 다른 이곳의 결혼문화를 교회의 지체들과 함께 경험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랑되심과 성도의 신부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길가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온갖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 당신의 흠도 티도 없이 순결한 신부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날, 다시 오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신부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자격 없는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맞으시는 주님의 은혜가 감사할 뿐이다.
예수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신부는 커녕, 여전히 주님과 원수로 지냈을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모자녀로만 본다면 일방적, 수동적일수도 있다.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에게 이러이러한 것들을 주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랑과 신부, 부부의 관계로 본다면 서로의 사랑과 헌신이 적극적으로 소통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때로 어려움과 유혹이 있을지라도 서로 참고 견디며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가는 기쁨이 얼마나 큰가.
따지고 보면 신부가 아름다운 이유는 신랑 때문인데, 결혼식이 너무 신부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닌지.
신랑 없이 신부가 있을 수 없고, 결혼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닌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결혼생활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는 커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더 많이 사랑하신다고 해서 그 사랑을 함부로 여긴 적은 없었던가.
자격 없는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이 우리를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만들어야 하는데, 여전히 자격 없는 삶을 즐기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놀랍고 크신 사랑을 싸구려쿠폰처럼 여기지는 않았는지.
고백컨데 나는 지금도 가끔 최신 유행 웨딩드레스에 관한 기사를 읽는다.
쑥스럽고 부끄러워서 달랑 세 벌 입어보고 “첫번째 드레스로 할래요”라고 했던게 아쉬워서만은 아니다.
15주년 리마인드 웨딩은 못 하겠지만, 목숨까지 내어주며 나를 사랑한 신랑되신 주님께 기쁨과 사랑을 표현하는 나만의 웨딩드레스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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