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북스

헌법의 풍경 by 김두식

SarahOh 2015. 9. 29. 14:58

- 국가를 사랑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국가에 대한 '사랑 표현'을 강제할 수는 없으며, 국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몇 배 더 중요한 것이 국가를 '통제'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는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국가를 '사랑의 대상' 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법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국가가 사랑해야할 대상일 뿐이라면 사실 법은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절대선인 국가가 명하는 대로 우리가 따라가면 되는 것이지, 특별히 법에 의한 지배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테니까요. p.82ff


- 나치 독일의 이야기는 법에 의한 지배가 그저 '외형상 법처럼 보이는 것들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정의에 합치되는 법에 의한 지배'여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법이라고 다 법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나치 독일의 법률가들이 충실히 따르려고 했던 법은 '법의 탈을 쓴 불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국가의 괴물화를 막기 위해 지켜내야 할 법은 반드시 '정의에 합치되는 법'이어야 합니다. '법의 탈을 쓴 불법'은 이미 괴물로 변해버린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악의 도구일 뿐이며 더이상 법일 수 없습니다. p.90


- 거주지 등록, 불변의 고유 번호, 강제 발급되는 국가신분증 제도의 세 가지 성격을 모두 갖춘 강력한 주민등록 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유례를 찾기가 힘듭니다... 이런 식으로 쌓인 우리의 정보는 언제든지 누군가에게 악용될 수 있습니다. p.108


- 영혼을 좀먹는 법조계의 논리: 1)무슨 일이 있어도 판검사 임용을 받아라 2)좋은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3)쓸데없이 튀지 말라 p.121~126


- 절대로 가족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법조계입니다. 검사는 국가를 대신해서 범죄자와 싸움을 벌이는 존재입니다. 변호사는 국가고 뭐고 신경 쓸 것 없이 의뢰인을 위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존재입니다. 판사는 거대 담론과 여론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법리에 의해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하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이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독립성입니다. p.158ff


- 누구나 잡아들일 수 있는 경찰: 기소독점 제도 

  누구나 풀어줄 수 있는 경찰: 기소유예 제도 예)1994년에 12.12군사쿠데타 주모자들에 대해,부천서 성고문 사건 문귀동 경관에 대해 


-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헌법 정신은 대부분 '인정한다. 그러나' 쪽에 가깝습니다. 기본권에 대해서는 온통 공자님 말씀 샅은 좋은 말로 한 페이지 정도를 장식하고, 막상 구체적인 사례에 들어가면 왜 그 권리가 제한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하는데 10페이지를 할애하는 법률 책들이 다 여기에 속합니다... 헌법을 이해하는 열쇠말은 '인정한다. 그러나'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권력자들은 누구나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인정한다. 그러나'의 논리를 들이대며 자기 눈에 거슬리는 것을 마음대로 제한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막지 못하면 이미 헌법이 아니 것이지요. 

상당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헌법 정신은 종교의 자유를 기본권의 하나로 받아들였습니다. 위험을 감수할 만한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P.215


- 종교의 자유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표현되었을 때에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도 외적인 종교활동과 실정법이 충돌하면 무조건 실정법 쪽의 손을 들어주는 태도를 택하는 것은 사실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종교의 자유는 자기 눈으로 볼 때 확실히 이상해 보이는 행동이지만, 헌법이 종교의 자유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한 행동을 관용한다는 것입니다. 이상해 보이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 관용하는 것은 이미 관용이 아니지요. 또한 설사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일정한 제한을 가한다 하더라도 그 제한이 기본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p.220ff


- 자기 종교의 자유를 지키려고 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지켜주는 데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자기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는 공산주의자라면 기독교인들의 종교의 자유를 지켜주는 데 남보다 더 열심일 수 있어야 합니다.음란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인인 저는 그 작품에 대해 청소년의 영혼을 좀먹는 쓰레기 같은 책이라며 구입 거부 운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 공권력이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를 붙잡아 가려고 할 때에는 마광수와 어깨를 결고 함께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저의 책이 청소년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명분으로 판매 금지되고 제가 붙잡혀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필요한 태도입니다.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일종의 형제관계이듯, 이 우산 아래 보호를 받는 우리 '이상한 사람들'도 헌법 아래에서는 일종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p.232ff


-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중에 학자들이나 언론으로부터 가장 많은 조명을 받아온 것이 '말할 권리'입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로도 불리는 '말할 권리'는 정치적 자유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할 권리'가 각광을 받는 동안, 그 못지않게 중요한 '말하지 않을 권리'는 법률가들의 직무 유기로 인해 거의 잊혀진 권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p.236


- 검사에 비해서 아무 무기도 지니지 못한 나약한 피의자,피고인이 그나마 존엄성을 지닌 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 절대적인 무기가 진술 거부권인 것입니다. 헌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술 거부권을 인정하게 딘 데에는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에서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신앙 고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생명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고백들이 모두 말로 이루어졌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이 사실은 곧 '이 사람들에게 만약 말하지 않을 권리가 주어졌다면, 이들이 생명을 잃지 않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가정을 가능하게 합니다.p.260ff


- 변호인이 없는 상태에서 행사하는 '말하지 않을 권리'는 어떤 의미에서 자살행위와 같습니다. 진술 거부권을 통해 입을 닫아버리고 나면, 이제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도 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술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입을 다물어버린 피의자, 피고인을 '대신하여'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변호인입니다. 형사상 불리한 진술을 거부한 사람은 입을 다문 상태에서도, 변호인 덕분에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262